바벨 언덕은 비스와(Wisła)강이 흐르는 크라쿠프 중심에 위치한 석회질 언덕입니다. 이 언덕에는 역사적·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인상적인 유적들이 모여 있습니다. 바벨 언덕은 폴란드인의 정체성을 품은 특별하고 성스러운 장소로 폴란드의 국가적·문화적 상징에 해당합니다. 바벨 언덕은 폴란드 왕이 거처한 곳이자 죽으면 묻혔던 곳이고, 또한 폴란드의 역사가 형성된 곳입니다.
바벨 언덕에 통치자의 궁전이 가장 처음에 세워진 시기는 볼레스와프 흐로브리(Bolesław Chrobry) 왕과 미에슈코 2세(Mieszko II) 왕이 재위한 11세기 전반이었습니다. 언덕 남동쪽의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전(前)로마네스크 양식의 궁전 단지에는 주거용 건물, 궁전 홀, 지하 통로가 있는 건물, 성 펠릭스와 성 아다욱투스 원형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이 원형 예배당은 마워폴스카(Małopolska) 지역 전로마네스크 건축의 전형이었습니다.
11세기 후반에는 24개의 기둥을 갖춘 2층 궁전 홀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홀의 유적은 현재 바벨 성의 북쪽 건물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한편 성의 서쪽 건물과 ‘바토리(Batory)의 안뜰’ 아래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게레온 성당(이집트의 성 마리아 성당)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11세기와 12세기에 주로 사용된 궁정 예배당이었습니다. 현재 이 성당이 발견된 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성 마리아 성당 건물은 측랑 세 개와 익랑, 동방 정교회식 지하실을 갖추었고, 성당 서쪽에는 탑이 두 개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13세기 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4세기에는 궁전 단지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바뀌었습니다. 24개 기둥을 갖춘 홀이 있던 자리에는 3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성의 북쪽 부분에는 방벽이 둘러 세워졌습니다. 궁전 안뜰로 들어가는 문도 이때 정비되었는데, 후에 복원을 거치기는 했으나 기본적인 모습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카지미에시 대왕(Kazimierz Wielki) 재위 기간(1333~1370)에는 기존 건물이 개조되고 새 건물이 지어지면서 성의 주거용 부분이 확장되었습니다. 이때 바벨 성을 대표하는 아치형 회랑이 딸린 주거용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14세기 말,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우워(Władysław Jagiełło) 왕 재위 기간에는 성의 남동쪽에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외부가 트레이서리로 장식된 주거용 탑이 새로 세워졌는데, 이 탑은 ‘덴마크 탑’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덴마크 탑 1층에 있는 ‘야드비가(Jadwiga)와 야기에우워의 방’의 늑골궁륭에는 야기에우워 왕조와 앙주(Anjou) 왕조의 문장(紋章)을 표현한 쐐기돌이 박혀 있습니다. 한편 ‘물의 탑’이라는 건물로 연결되던 아치형 회랑이 완공되었습니다. 최근에 복원된 야기에우워 왕조 문장, 독수리 문장, 추격자 문장을 볼 수 있는 이 회랑은 17세기 이후로 ‘암탉의 발’이라는 별명으로 흔히 불려 왔습니다.
바벨 성의 현재 모습은 지그문트 스타리(Zygmunt Stary) 왕의 재위 기간에 속하는 1506년부터 1534년까지의 대규모 공사 때 완성되었습니다. 조각가이자 궁정 건축가였던 프란체스코 피오렌티노(Francesco Fiorentino)가 공사를 지휘했습니다. 벽돌을 쌓는 작업은 코블렌츠(Koblenz) 출신의 에베르하르트 로젠베르거(Eberhard Rosenberger), 그리고 베네딕트(Benedict)라는 인물의 감독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성의 서쪽과 북쪽 건물은 고딕 양식 건물의 토대 위에 세워졌고, 동쪽 건물은 토대부터 새로 지어졌습니다. 남쪽 부분에는 르네상스식 안뜰을 둘러싸는 회랑 벽이 세워졌습니다. 바르톨로메오 베레치(Bartolommeo Berrecci)를 필두로 석공들은 성 전체에 르네상스 양식의 세부 장식을 더했습니다. 일부 창틀과 문에서 여전히 고딕·르네상스 양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공사 중에 이집트의 성 마리아 성당, 성 펠릭스와 성 아다욱투스 원형 예배당 등 오래된 궁정 예배당이 철거되었습니다.
1595년에 화재가 발생한 뒤, 지그문트 3세 바자(Zygmunt III Waza) 왕의 지시로 성의 북쪽 부분이 보수·확장되었습니다. 조반니 트레바노(Giovanni Trevano)가 작업을 감독했고, 암브로시우스 메아치(Ambrosius Meazzi)와 조반니 바티스타 페트리니(Giovanni Battista Petrini) 등이 참여했습니다. 17세기 초에 성의 북동쪽에 바로크 양식 돔이 덮인 탑이 세워졌고, 이후에 성의 북서쪽에 그와 유사한 주거용 탑인 소비에스키(Sobieski) 탑이 세워졌습니다. 탑의 내부는 초기 로마 바로크 양식의 건축·조각 장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베네치아 출신 화가 토마소 돌라벨라(Tommaso Dolabella)가 완성한 천장과 천장 골조가 눈길을 끕니다. 1655년부터 1657년까지는 스웨덴군이 바벨 성을 점령했습니다. 1702년에 스웨덴군은 성을 다시 점령해서 안에 병원과 병영을 차렸는데, 그때 매우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복원 작업이 시행되었음에도 18세기와 19세기까지 바벨 성은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1804년부터 1807년까지 성이 오스트리아군의 병영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회랑이 벽으로 막혀 버렸습니다. 1854년부터 1856년까지의 복원을 통해 바벨 성에는 신고딕 양식의 특징이 더해졌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1905년부터 1911년까지 바벨 성에서 물러났고, 그 즈음 철저한 복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그문트 헨델(Zygmunt Hendel, 1905~1914), 이그나치 소빈스키(Ignacy Sowiński, 1914~1916), 아돌프 시슈코-보후시(Adolf Szyszko-Bohusz, 1916~1939, 1945~1947), 알프레트 마예프스키(Alfred Majewski, 1951~1983) 등의 건축가가 차례대로 복원을 감독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바벨 성은 폴란드 대통령궁과 오래된 내부 장식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40년부터 1943년까지는 나치가 폴란드에 보낸 총독이었던 한스 프랑크(Hans Frank)가 바벨 성에 거처했습니다. 현재는 바벨 성 국립박물관(Wawel Royal Castle – National Art Collection)이 성에 들어서 있습니다.
바벨 성 안뜰로 들어갈 때는 바르톨로메오 베레치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복원한 현관 건물을 지나게 됩니다. 건물 전면에는 원래 워브주프(Łobzów)에 위치한 카지미에시 대왕의 성에서 1370년에 발견되었던 피아스트(Piast) 왕조 독수리 문장 조각이 있습니다. 홀 안에서는 베레치가 1534년에 조각한 폴란드, 리투아니아, 스포르차(Sforza) 가문의 방패형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홀 안의 두 회랑의 아치는 프란체스코 피오렌티노와 베레치가 각각 1507년과 1525년에 만든 로제트 장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 전면 상부는 18세기 말에 만들어졌습니다.
성 안뜰에서는 주거용 건물 세 채를 둘러싼 회랑과 남쪽 외벽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서쪽 건물 2층에는 1504년부터 1507년까지 프란체스코 피오렌티노가 설계한 회랑이 있는데, 순수한 피렌체 르네상스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장식 부품, 아라베스크 무늬와 촛대 무늬, 세 개의 다색 문장 등은 폴란드 건축물에서 발견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장식의 가장 오래된 사례에 해당합니다. 동쪽 건물과 남쪽 건물 지붕 아래쪽은 디오니지 스투바(Dionizy Stuba)가 1535년과 1536년에 제작한 채색 프리즈,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흉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원래 프리즈는 안뜰 쪽을 향한 건물 벽 전체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바벨 성에 자리한 바벨 성 국립박물관에는 ‘접견실’, ‘왕의 사적인 공간’, ‘동방 예술’, ‘왕실 보고(寶庫)와 무기고’, ‘잃어버린 바벨’ 등 5종의 상설 전시가 열려 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이 바벨 성을 떠나기 시작한 1905년에 고증에 따라 성의 내부를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병영으로 개조된 흔적은 제거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양식의 궁륭과 프레스코화가 복원되었고, 17세기에 만들어진 포트호르체(Podhorce) 궁전의 천장을 본떠 골조가 드러난 천장이 설치되었습니다. 창틀이 추가로 설치되고 현관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보존되지 못한 르네상스 양식의 기와형 난로를 대신하기 위해 볼히니아(Volhynia) 지역에 위치한 비시니오비에츠키(Wiśniowiecki) 궁전에서 가져온 18세기에 제작된 난로 다섯 개가 설치되었습니다. 성에 전시된 물품 중 가장 가치 높은 것으로는 지그문트 아우구스트(Zygmunt August) 왕의 의뢰로 1550년에 제작된 르네상스 양식의 태피스트리가 있습니다. 이 태피스트리들은 뛰어난 화가였던 미히엘 콕시(Michiel Coxie)가 만든 무늬를 따라 브뤼셀 직공들이 제작한 것입니다. 바벨 성이 보유한 138종의 태피스트리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이고, 또한 가장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바벨 성으로 들어가는 계단은 두 곳 있습니다. 동쪽 건물의 하원 계단은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보이던 계단들을 본떠 만들어졌습니다(석조 부분은 1927년에 제작). 안뜰에서 북쪽 건물로 들어가는 상원 계단은 1595년 화재 이후에 조반니 트레바노가 만들었습니다.
동쪽 건물 1층에는 1520년대에 베네딕트의 공방에서 제작된 고딕·르네상스 양식의 문이 있는데, 이 문에는 알프스 북부 지역과 이탈리아의 양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 건물에는 왕족의 소유지와 성을 관리하던 크라쿠프 관리들과 그 부하들이 살았습니다.
1층에는 왕이 주로 사적으로 사용한 방, 그리고 궁정의 수행원과 손님이 쓰는 방이 있습니다. 현재 이 방들은 성의 다른 실내 공간들처럼 16세기와 17세기 왕궁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예술품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1702년의 화재에도 파괴되지 않은 일부 방에서는 16세기의 두 번째 사반세기에 제작된 고딕·르네상스 문, 르네상스 양식의 천장과 일부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습니다. 덴마크 탑은 지그문트 3세 바자 왕이 연금술 실험을 한 곳입니다. 1927년부터 1939년까지는 덴마크 탑에 폴란드 대통령이었던 이그나치 모시치츠키(Ignacy Mościcki)의 침실이 있었고, 현재도 그 방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성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은 ‘암탉의 발’에 있습니다. 이곳의 두 방은 골조가 드러난 장식 천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리석 문과 벽난로는 1600년경에, 방 안의 다른 비품들은 16세기와 17세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성의 동쪽 건물 1층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내부 장식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다색 천장과 가장자리의 프리즈 벽은 유명한 인물의 형상을 조각한 이탈리아의 채색 프리즈를 모방한 것입니다. 지그문트 왕의 의뢰로 제작된 사티로스가 그려진 태피스트리가 벽에 걸려 있습니다.
2층 방들은 성을 대표하는 곳으로, 여러 궁정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습니다. 대부분 르네상스 양식이지만 북쪽 건물에서는 초기 바로크 양식이 엿보입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문과 천장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인 1918년과 1939년 사이에 만들어졌습니다. 성에서 가장 유명한 실내 공간인 ‘하원의 방(Envoys’ Room)’은 ‘머리 아래의 방(Under the Heads Room)’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방의 오래된 천장에는 나무조각가 제바스티안 타우어바흐(Sebastian Tauerbach)가 1540년경에 조각한 두상 194개가 있었는데, 현재는 30개만 남아 있습니다. 이 천장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 천장으로 여겨졌습니다. 한편 ‘마상 시합의 방’에서는 한스 뒤러(Hans Dürer, 유명한 알브레히트 뒤러의 남동생)가 1530년대에 제작한 프리즈 벽을, ‘군대 사열의 방’에서는 브로츠와프의 안토니(Antoni of Wrocław)가 제작한, 군대 행진 모습을 표현한 프리즈를 볼 수 있습니다. 2층에서 주목할 만한 다른 실내 공간으로는 ‘새의 방’, ‘독수리의 방’, 그리고 ‘타네츠니차(Tanecznica, ‘춤추는 사람’)’라고도 불리는 ‘상원의 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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