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saw 10 ºC

쿠야비포모제(Kujawsko-Pomorskie)주의 두 공동 주도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중세 시대 마을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폴란드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토룬(Toruń): 코페르니쿠스의 고향

15세기에 폴란드 역사가 얀 드우고시(Jan Długosz)는 “토룬은 건물이 장식되어 있고 지붕이 벽돌기와로 덮여 있으니, 놀랍도록 빛나는 이곳에 필적할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를 찾기 어렵다.”라고 묘사했습니다. 토룬은 13세기에 튜턴 기사단이 세운 도시입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토룬의 원래 위치가 현재와 달랐다는 것입니다. 튜턴 기사단의 연대기에 따르면 도시가 이동해야 했던 이유가 지속되는 홍수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도시가 이동한 지 얼마 뒤에 구 토룬과 신 토룬이 각각 발달하자 튜턴 기사단은 두 도시 사이에 성을 세웠습니다.

천사의 도시

토룬이 둘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토룬에 구시가 광장이 두 곳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중 구 토룬 광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구 시청이 서 있습니다. 구 시청 입구 위에는 토룬의 문장(紋章)을 나타내는 조각이 달려 있는데, 천사가 열쇠와 세 개의 탑이 달린 성의 입구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문장 속 입구의 양쪽 문 중 하나만 열려 있는 모습에 대해 어떤 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반은 열려 있고 반은 닫혀 있으니, 이유가 무어냐고 여럿이 물으리라. 닫힌 것은 험악한 적에 대해서고, 열린 것은 손[客]에 대해서라.”

토룬의 여러 동물들

구 시청 가까이에 있는 분수는 개구리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개구리들의 등을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개구리 등을 두드리면 무엇을 얻을까요? 답은 간단하게도, 행복입니다! 분수 옆에 서서 고개를 위로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집 지붕 위에서 토룬을 지켜 주는 검은 고양이가 보입니다. 토룬에 온 관광객이 광장 옆의 당나귀 동상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는 이 동상이 서 있는 자리에서 처벌이 행해졌습니다. 오래전에는 당나귀 등에 날카로운 금속 막대를 붙이고 규율을 따르지 않는 경비병을 당나귀 등에 앉혀 고통을 주었고, 경비병의 발에 무거운 물건을 매달아서 고통을 더욱 키웠습니다. 광장 반대편 가로등 기둥 옆에는 필루시(Filuś)라는 개가 주인의 중산모를 입에 물고 앉아 있습니다. 필루시의 머리를 토닥여 주면 지혜를 얻고, 꼬리를 잡으면 사랑할 때 행운이 따른다고 합니다.

여기도 저기도 고딕

토룬에는 비스와(Wisła)강이 흐르는데, 이런 위치적 특징은 토룬의 경제가 처음부터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입니다. 토룬이 한자동맹에 속한 도시였다는 사실은 셰로카(Szeroka) 거리 바닥에 새겨진, 토룬과 무역한 도시들의 문장을 보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토룬의 부유함은 도시 방벽, 시청, 시민 주택, 수많은 성당에 드러나 보였고, 오늘날에도 토룬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당시에 토룬이 풍족했다는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도시의 문, 성벽, 성당들이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만으로도 토룬에 큰 기대를 품은 관광객의 마음을 확실히 붙잡아 충분히 기쁨을 줍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도시

옛날에 크라쿠프(Kraków) 출신의 어느 상인이 이 부유한 도시에 왔습니다. 이름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던 상인은 토룬에 와서 자식 넷을 두었는데, 그중 한 아들의 이름이 아버지와 똑같은 니콜라우스였습니다. 이 위대한 천문학자가 정확히 어느 집에서 태어났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세례를 받은 장소인 세례대는 성 제임스 성당의 코페르니쿠스 예배당에 있습니다. 유명한 천문학자의 발자취를 더듬고자 한다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집 박물관(Nicolaus Copernicus House Museum)을 절대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박물관의 일부 전시는 코페르니쿠스 가족이 소유했던 집에서 진행 중입니다.

진저브레드의 도시

토룬은 진저브레드로도 유명합니다. 토룬에 오면 진저브레드 제과의 달인이 주의 깊게 지켜보는 가운데 예전에 비법으로 전수되던 내용을 배우고, 향신료 향기를 흠뻑 맡으면서 기념으로 가져갈 진저브레드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토룬의 명물인 진저브레드를 만들 수 있는 몇몇 장소 중 토룬 진저브레드 박물관과 진저브레드 리빙 뮤지엄(Living Museum of Gingerbread)이 아주 큽니다. 현재 밝혀진 바 가장 오래된 토룬 진저브레드 레시피는 의료 서적에서 발견되는데, 그 제목은 ‘의학개론 확장편(Compendium medicum auctum): 병의 종류, 원인, 증세, 치료와 보드카, 기름, 물약, 시럽, 잼, 연고, 반창고 및 여러 특이한 것들의 제조법, 다양한 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짧은 모음집과 설명 등 7개의 주제로 나뉘어짐(…)’입니다.

토룬 요새

토룬은 과거에 요새 도시였습니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도시 방벽에는 문이 12개, 방어탑이 60개 이상, 옹성이 2개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방어탑은 토룬 사탑(斜塔)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튜턴 기사가 죄를 범해 탑을 지으라는 벌을 받았는데, 규율에 어긋난 자기의 모습처럼 탑도 수직에 어긋나게 짓는 것이 벌이었습니다. 토룬에 오면 이 사탑 밑에서 발뒤꿈치만 바닥에 대고 등과 머리를 벽에 기댄 채 팔을 앞으로 뻗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세로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설 수 있다면 깨끗한 양심을 지닌 것이라고 합니다. 방벽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부분이 비스와강을 향해 있는데, 이 부분에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던 세 개의 문이 있습니다. 17세기에는 스웨덴 군대의 위협을 막기 위해 도시 주위로 웅장한 보루들이 지어졌습니다. 그로부터 200년 후에는 프로이센 왕국이 둘레가 약 22.5킬로미터에 달하는 원형 방벽을 지어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이 방벽이 건설되는 동안 비스와강 양편에 요새 15개를 포함해 방어용 시설이 약 200개 지어졌습니다. 훈련을 받고 싶은 분은 4번 요새에서 프로이센 병사의 지도를 직접 받을 수 있습니다.

튜턴 기사단 성

중세 시대에 지어진 토룬의 방어 시설 중에 특이하게도 외따로 떨어진 곳이 있는데, 튜턴 기사단이 세운 성입니다. 위에서 볼 때 말편자 형태로 지어진 이 성은 비스와강 우안에 처음으로 세워진 튜턴 기사단 성이었습니다. 성이 건설되기 시작한 시기는 13세기였습니다. 이 성은 15세기 중반에 토룬 시민들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이는 권력 남용이 어떻게 끝이 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토룬 시민들은 성을 파괴하기 위해 성에서 일하던 요르단(Jordan)이라는 요리사를 끌어들였고, 요르단은 계단을 올라 탑 꼭대기에 다다라서 시민들에게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테 안타깝게도 시민들이 탑을 너무 강하게 폭발시킨 나머지 요르단마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요르단은 토룬 땅을 온통 가로질러 날아가다가 결국 토룬 방벽의 어느 문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평화의 도시

폴란드 왕국과 튜턴 기사단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토룬에서 평화 조약을 두 차례, 각각 1411년과 1466년에 체결했고, 1466년의 평화 조약으로 토룬은 폴란드 왕국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얀 드우고시는 연대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0월 19일 일요일, 며칠에 걸쳐 조항과 규정이 작성된 영구적 평화 협정을 확인하고 승인한 끝에 … 카지미에시 왕과 루트비히 단장은 수많은 수행원을 이끌고 토룬 시장에서 직접 만났다. 양쪽이 친절한 태도로 인사를 나눌 때 정숙이 요구되었고, 교황 특사 루돌프가 폴란드의 카지미에시 왕, 그리고 프로이센과 기사단의 루트비히 단장이 영구적 평화 협정을 완전하고 성공적으로 체결하였음을 선언하였다.”

왕과 토룬

토룬이 튜턴 기사단에 속했을 때나 폴란드에 속했을 때나 폴란드 왕들은 토룬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1404년 5월 말에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우워(Władysław Jagiełło) 왕이 방문했을 때의 일을 드우고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왕이 도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프로이센 단장과 함께 3일 동안 거리를 두루 살필 때, 요리를 하던 여인이 설거지물을 브와디스와프 왕에게 쏟았다. 단장은 여인을 붙잡아 익사시키라고 명했으나 왕이 친절하게도 여인을 구해 주었다.” 한편 토룬을 가장 자주 방문한 왕은 카지미에시 야기엘론치크(Kazimierz Jagiellończyk) 왕으로, 정확히 열여섯 차례 이루어진 방문의 기간을 모두 합하면 14개월에 이릅니다.

토룬에서 가장 크고 좋은 것

1500년, 요한 대성당 탑에 종 하나가 걸렸습니다. 종의 이름은 투바 데이(Tuba Dei), ‘신의 나팔’입니다. 당시 폴란드 왕국에서 가장 컸던 이 종은 무게가 7톤, 높이가 2미터, 지름이 2미터 이상이나 됩니다. 성당 탑에 올라가면 이 종을 볼 수 있습니다. 비스와강에서는 이 탑의 벽에 걸린 ‘뗏목 타는 이들의 시계’가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시곗바늘이 하나뿐입니다.

비스와강에 뜬 배 위에서, 강 위로 놓인 다리에서, 좌안의 단구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폴란드의 절경’으로 꼽히는 토룬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토룬의 구시가는 “뛰어나면서도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2월 4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꼭 한번 방문해야 할 도시 토룬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홈페이지에서 토룬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확인하세요

Polish National Tourist

주요 링크
외무부
열차 운행 시간표
환율계산기
폴란드 캠프사이트
폴란드로 가요!
폴란드 문화원-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