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린(Lubelskie)주의 주도로, 박물관, 오래된 건물, 전통 음식, 그리고 거리와 골목과 건물 벽에 담긴 전설에서 엿보이는 역사가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루블린(Lublin): 영감을 주는 도시
‘영감을 주는 도시’라는 표어는 폴란드 동부의 중심 도시이자 루블린주의 주도인 이 도시에 아주 잘 들어맞습니다.
수백 년 동안 루블린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도시였습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1569년에 양국 의회의 합의에 따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이루었습니다. 이 연합이 선언된 장소인 루블린 성은 카지미에시 3세 대왕(Kazimierz III Wielki) 때 지어지고 17세기에 전쟁으로 무너졌습니다. 영국식 신고딕 양식으로 복원된 루블린 성은 이후 128년 동안 차례대로 차르 당국, 폴란드 제2공화국, 나치, 스탈린 비밀 경찰에 의해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루블린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이 성은 문화적 역할을 담당하며 도시 전체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간직한 건물입니다.
루블린 성 아래 잠코비(Zamkowy) 광장에서는 카나발 슈투크미스트슈프(Carnaval Sztukmistrzów) 축제 기간에 주요 서커스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주요 행사인 이 축제는 구시가, 크라코프스키에 프셰드미에시치에(Krakowskie Przedmieście) 거리, 리테프스키(Litewski) 광장에서 열립니다. 축제에서는 서커스, 마술, 저글링, 불꽃 묘기, 버스킹 연주 등의 공연이 활발히 펼쳐집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곳들
루블린 성에 접한 구시가는 전쟁을 견디고 살아남은 곳입니다. 구시가가 전후에 일부 복원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구시가 건물 중 무려 70퍼센트가 전쟁 이전부터 있던 건물입니다. 도시의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는 다채롭게 장식된 르네상스 및 고전주의 양식 주택 건물을 보고, 여러 식당과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지역 특유의 요리를 즐겁게 맛볼 수 있습니다. 겨우 1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구시가 안에 구 시청, 도미닉 수도회 대성당을 포함한 역사적 건물이 110채나 빼곡히 서 있습니다. 고딕부터 고전주의까지 다양한 양식이 사용된 도미닉 수도회 대성당에는 ‘루블린의 불(The Fire of Lublin)’이라는 그림, 아름다운 티슈키에비츠(Tyszkiewicz) 예배당, 피를레이(Firlej) 예배당이 있습니다. 스타리(Stary, ‘옛’) 극장은 폴란드에서 크라쿠프(Kraków) 국립극장 다음으로 오래된 극장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논쟁적이고 역동적인 작품들을 상연합니다.
카테드랄니(Katedralny, ‘대성당’) 광장에 있는 루블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도시 전체에서 가장 큰 종교 건축물입니다. 이 성당은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거의 최초로 세워진 바로크 건축물입니다. 성당 내부는 아우구스트 3세(August III Sas)의 궁정 화가였던 유제프 메예르(Józef Meyer)가 직접 그린 유명한 다채로운 그림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경하며 바라보는 성모 그림은 쳉스토호바(Częstochowa) 지역에 있는 야스나구라(Jasna Góra) 수도원의 ‘검은 성모’ 그림의 복제화인데, 1949년 7월 3일에 그림 속 성모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이 ‘루블린의 기적’을 보았다고 이야기한 신자들은 스탈린 치하에서 심한 억압을 받았습니다). 성구실은 좋은 음향이 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한쪽 구석에서 속삭이는 말이 반대편에서도 명확하게 들릴 정도입니다. 성당 보고(寶庫)에는 귀중한 성유물이 가득한데, 루블린에 대한 책을 쓴 보이치에흐 구르스키(Wojciech Górski)가 “보고를 보지 않았다면 루블린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평했을 정도로 특별한 곳입니다. 성당 옆의 삼위일체 탑은 높이가 65미터에 달해 꼭대기의 테라스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탑 뒤편에 서 있는 돌은 ‘불행의 돌’이라 불리는데, 이 돌 위에서 무고한 사람이 참수형을 받은 뒤로 돌이 오늘날까지 나쁜 기운을 뿜게 되었다고 합니다. 루보멜스키(Lubomelski) 가족이 살았던 주택에 자리한 ‘포르투나 밑 와인 지하실(Wine Cellar Under Fortuna)’ 박물관에는 빼어난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졌음에도 세속적 주제를 다룬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두 개의 문과 왕
도시 방벽의 일부이자 구시가로 들어가는 입구인 두 문은 서로 반대쪽에 있습니다. 크라코프스카(Kraków) 문의 네모진 하부는 벽돌로 지어져 있고, 꼭대기에는 지붕이 뾰족한 흰색 탑이 올려져 있습니다. 크라코프스카 문 내부는 루블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그로츠카(Grodzka) 문은 건물 외벽을 떼어 놓은 듯한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과거에는 이 문을 통해 기독교인이 사는 구역과 유대인이 사는 구역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문’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스테판 바토리(Stefan Batory) 왕이 루블린에 유럽 유일의 유대인 의회인 ‘4개국 의회(Council of Four Lands)’를 세운 결과 16세기와 17세기에 루블린의 유대인 사회는 폴란드의 유대인 사회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도 루블린과 연관이 있는데, 싱어의 조부모가 루블린 근처 유대인 마을 비우고라이(Biłgoraj)에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싱어는 ‘루블린의 마술사(The Magician of Lublin)’라는 소설에 지나간 시절의 분위기를 생생히 담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이 유대인 마을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이 그로츠카 문 – NN 극장 센터(Brama Grodzka – NN Centre)에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알테르 호텔(Alter Hotel), 그리고 유대인 공동묘지 두 곳이 보존되어 있는 예시바(yeshiva)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대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루블린 유대 유산의 길(Heritage Trail of the Lublin Jews)를 추천합니다. 루블린 메트로폴리탄 신학교 벽에 있는 폴란드 왕들의 모습은 거리에서 일부만 보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봐야 합니다.
양봉장, 분수, 맥주
루블린에는 구시가 말고도 훨씬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가장 넓은 광장인 리테프스키(Litewski, ‘리투아니아’) 광장은 조명과 음향이 어우러지는 멀티미디어 분수를 자랑합니다. 광장의 여러 벤치에서는 편히 휴식을 취하거나 진행 중인 행사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원 안에는 유제프 피우수츠키(Józef Piłsudski) 대장 동상, 무명용사의 묘, 5월 3일 헌법 기념비, 1569년 루블린 연합 서명 기념탑 등 다양한 기념물이 있습니다.
문화 만남의 센터(Centrum Spotkania Kultur, CSK)가 위치한 현대적인 건물의 옥상 전망대에는 도시 예술 양봉장(Urban Artistic Apiary)이 있습니다. 인기 있는 ‘칠아웃 존’인 CSK에서는 연극, 오페라, 음악회, 콘퍼런스, 영화 상영회를 주최합니다. CSK 건물 안에는 오페라, 실내악, 발레 공연장, 영화관, 개방형·밀폐형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베르나르딘스카(Bernardyńska) 거리에 있는 페르와(Perła) 양조장은 루블린의 산업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과거에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성당으로 쓰였던 건물 내부를 개조해 만든 이 양조장에서는 1846년부터 2001년까지 맥주가 생산되었습니다. 한 시간 진행되는 페르와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은 양조장의 역사, 맥주 양조의 비법, 맥주병의 모양과 라벨이 바뀐 내력을 알아본 다음, 마지막에 맥주를 시음하는 순서로 마무리됩니다.
루블린에서는 문화의 밤(Night of Culture), 문화의 동쪽 – 다양한 소리(East of Culture – Different Sounds) 축제, 루블린 전설 축제(Festival of Lublin Legends), 야기에우워 박람회(Jagiellonian Fair), 유럽 맛의 축제(European Festival of Flavours)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