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슈니키즈드루이는 크워츠코(Kłodzko) 권곡에 자리한 온천 도시로, 행정구역상 돌니실롱스크(Dolnośląskie)주 크워츠코군에 속합니다. 도시에는 비스트쉬차(Bystrzyca)강이 흐릅니다. 산록 지대 온천 휴양지로 분류되는 이 도시는 온천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지역 일대의 주요 관광지로 꼽힙니다.
두슈니키의 ‘냉천(冷泉)’에 대한 언급은 15세기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17세기 후반에 두슈니키는 직물업, 제지업, 섬유 무역의 중심지가 된 한편 온천 휴양지로도 알려졌습니다. 1748년에는 두슈니키의 온천이 최초로 연구되었고, 1769년에는 두슈니키의 냉천이 프로이센의 공식 온천 휴양지 목록에 올랐습니다. 1797년에는 욕조 여섯 개가 있는 임시 건물에서 냉천수를 예열한 물을 이용하는 요법이 실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두슈니키에서 온천도 발견되었는데, 이 온천은 훗날 ‘쇼팽의 거품 목욕’이라는 뜻의 ‘피에니아바 쇼피나(Pieniawa Chopina)’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802년에는 도시 외곽에 파빌리온, 목욕 시설, 사교용 건물, 숙소가 세워졌고, 두슈니키는 지역 일대의 매우 유명한 휴양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826년에는 당시 16세였던 프레데리크 쇼팽이 요양을 하기 위해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과 함께 두슈니키에 왔습니다. 쇼팽은 두슈니키에서 연주회를 두 차례 가졌고, 연주회 수입은 지역의 고아를 돌보는 데에 쓰였습니다.
19세기 말에는 두슈니키에 투자가 더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새로 지어진 목욕 시설 일부에는 현재 자연의학 협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1877년에 완공된 야자나무 온실과 음악당은 현재 광천수 음용실로 사용됩니다. 1890년부터 1905년까지 진행된 공사를 통해 두슈니키가 쿠도바(Kudawa)와 철도로 연결되며 두슈니키는 더욱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두슈니키는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고, 두슈니키에 남아 있던 독일 출신 주민은 본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도시가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덕분에 1946년에 국제 쇼팽 축제가 처음으로 열릴 수 있었습니다. 소형 숙소와 호텔은 모두 국유화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두슈니키에 홍수가 닥친 탓에 오래된 스파 공원을 비롯한 각종 온천 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쇼팽이 거주하던 곳을 포함한 스파 공원 전체는 어렵사리 복구되었고, 현재는 홍수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다채로운 빛깔의 음악 분수가 다시 지어졌으며 개천 위를 지나는 다리가 원본 사진에 근거해 복구되었습니다.
현재 두슈니키의 스파 리조트에서는 심장·위·폐 관련 질환, 부인과 질환, 골다공증을 앓는 환자를 위한 요법과 의료 서비스를 다방면으로 실시합니다.
두슈니키에서 온천을 제외하고 볼만한 곳으로는 제지 박물관이 꼽힙니다. 두슈니키에 남아 있는 제지소는 유럽 전역의 산업 관련 장소를 통틀어 건축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두슈니키의 제지 전통은 16세기에 시작되었으며, 기록에 따르면 1562년에 이 도시에 제지소가 처음 세워졌습니다. 이 제지소는 17세기 초에 홍수로 파괴되었지만 곧바로 다시 지어져 오늘날까지 서 있습니다. 1968년에 제지소는 박물관으로 개관했고, 수작업으로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전시는 두슈니키에 오는 수많은 관광객에게 주목받았습니다. 1998년에 다시 홍수가 닥쳐 박물관이 크게 피해를 입었는데, 기존에 보존되어 있던 건조실의 토대가 쓸려 나간 데다 수많은 흙과 먼지가 건물 안에 들어와 쌓였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피해가 보상되고 건물이 복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