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피엔네는 마워폴스카(Małopolskie)주 고를리체(Gorlice)군 셍코바(Sękowa)자치구에 속한 온천 마을입니다. 베스키드 니스키(Beskid Niski)산맥의 온천 휴양지 중 매우 작은 편인 바피엔네는 바피엔카(Wapienka)산 계곡에 위치하며 위사 구라(Łysa Góra), 페르델(Ferdel), 카미엔 구라(Kamienna Góra), 멩친스카 구라(Męcińska Góra) 등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바피엔네는 산록 지대 온천 휴양지에 해당하며 카르파티아(Carpathia)산맥 원시림에 속하는 넓은 혼합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을 일부는 마구라(Magura) 국립공원에 포함되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보호구역에 속합니다. 바피엔네의 스파 리조트에서는 산록 지대의 독특한 기후에 더해 황화물, 중탄산염, 칼슘, 소듐, 마그네슘이 풍부한 천연 온천수와 우수한 효능을 나타내는 진흙을 요법에 주로 이용합니다.
바피엔네 땅에는 1546년에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지그문트 스타리(Zygmunt Stary) 왕이 왈라키아 법에 근거해 멩치나(Męcina)를 다스리던 행정관의 아들 미하우에게 렘코인이 살던 땅에 마을을 세울 권리를 주었습니다. 1629년까지 바피엔네는 비에츠(Biecz) 지구에 속하며 왕에게 소유된 땅이었으나, 1765년에 루보미르스키(Lubomirski) 가문에게 팔렸습니다. 그 뒤 바피엔네는 비에츠의 다른 땅 대부분과 함께 오스트리아에 매각되었고, 매각을 주도한 당시 비에츠의 통치자 빌헬름 시에미에인스키(Wihelm Siemieński)는 1789년에 아내와 아들 스타니스와프를 데리고 바피엔네를 떠났습니다. 1890년에 바피엔네에는 56가구 335명이 살았는데, 그 뒤로 인구가 늘어나 1938년에는 귀일교회 신자 약 460명이 살았습니다. 이 귀일교회 신자들을 위한 교구 성당은 인근 마을인 멩치나 비엘카(Męcina Wielka)에 있었습니다.
바피엔네의 온천 역사는 17세기에 이곳에서 성병이 치료되면서 시작되었으나, 한참 뒤인 19세기에야 바피엔네가 비로소 대규모로 개발되었습니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1810년과 1815년 사이, 바피엔네가 ‘슈베델바트(Schwedelbad)’로 알려진 시기에 나폴레옹 군대가 이곳에서 치료받았다고 합니다. 1848년까지 바피엔네에는 별장 세 채, 그리고 욕조 50개가 목조 건물 36채에 배치된 목욕 단지가 지어졌으나, 안타깝게도 1878년과 1894년에 화재로 파괴되었습니다. 이 시설들은 바피엔네의 새 주인이 된 부브니아크(Bubniak) 가문에 의해 1904년부터 1906년까지 복원되었는데, 1915년에 고를리체 공격 작전의 일환으로 러시아군의 2차 방어선이었던 페르델(Ferdel)과 코르누티(Kornuty) 등의 산에서 여러 전투가 벌어지면서 또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시설 일부가 복원되어 하루에 약 100명이 온천욕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바피엔네가 차차 다시 개발되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바피엔네의 온천은 지역 소농의 소유였고, 인근 마을의 소농과 주민들만 치료를 위해 이 온천을 찾았습니다. 크리니차(Krynica)의 온천 시설이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던 것과 달리 바피엔네의 온천 시설은 소박하게 꾸며졌고 이용료가 저렴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다시 피해를 입은 바피엔네의 온천 시설은 일부분만 수리된 뒤 1948년에 재개장했고, 1952년부터는 온전한 상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개조가 이루어졌으나 소규모로만 달라졌습니다. 1973년까지는 바피엔네에 20미터 야외 수영장, 스포츠·레저 구역, 고급 별장이 들어섰습니다. 현재 바피엔네에는 어린이나 청년 들이 캠핑을 하며 휴가를 보내려고 많이 찾아옵니다.
오늘날 바피엔네의 스파 리조트는 운동 장애, 류머티즘, 순환계 질환, 피부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합니다. 바피엔네의 세 온천은 각각 ‘마르타(Marta)’, ‘카밀라(Kamila)’, ‘주잔나(Zuzanna)’라고 불립니다. 친근감이 느껴지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지닌 바피엔네에 머무르면 몸에 도움이 되는 치료를 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휴가 또한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