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보쇼비체는 마워폴스카(Małopolskie)주 크라쿠프(Kraków)시에 속한 지구입니다. 저지대 온천 휴양지에 해당하는 스보쇼비체는 빌가(Wilga)강 계곡에 위치하며 온화한 기후를 나타내고, 주변과 국소적으로 다른 기후를 나타내는 미기후 지역이 형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보쇼비체의 온천은 이런 특별한 기후에 더해 황산염, 중탄삼염, 황화칼슘, 황화마그네슘이 풍부한 온천수를 요법에 주로 이용합니다. 스보쇼비체는 폴란드의 온천 도시 중 가장 오래된 편인데, 도시의 이름은 이 땅에 스보시(Swosz)라는 마을을 세운 ‘드 스보쇼프’라는 기사에게 유래합니다.
스보쇼비체는 1362년 3월에 작성된 티니에츠(Tyniec) 수도원의 문서에 처음 언급되며, 이 문서에는 스보쇼비체 최초의 영주가 보이치에흐 드 스보쇼프(Wojciech de Swoszow)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422년에는 스보쇼비체에 유황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는데, 최초의 유황 광산은 오늘날에도 의료 목적에 한해 채굴되고 있습니다. 스보쇼비체에 이런 광산이 있다는 사실은 광석 제련을 통해 발생한 찌꺼기 더미, 그리고 거리 이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취로 드러납니다.
스보쇼비체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황금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스보쇼비체는 크라쿠프 자유시(Free City of Kraków) 인근에 위치하지만 자유시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마을이었고, 이곳에서 발견되는 온천수가 높은 효능을 나타낸다는 점을 파악한 펠릭스 라드바인스키(Feliks Radwański) 교수가 목욕 시설을 지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보쇼비체는 매력적인 온천 휴양지로 발전하여 환자와 일반 휴가객 양쪽 모두에게 매우 높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1830년에 러시아 제국에 대한 반발로 11월 봉기가 일어나 이듬해까지 이어져 전국이 파괴되는 동안 스보쇼비체의 인기도 줄어들었습니다. 스보쇼비체는 또 다른 저명한 인물, 온천 요법을 개발한 의사였던 유제프 디에틀(Józef Dietl) 박사 덕택에 예전의 영예를 되찾았습니다. 그 무렵에 온천 시설을 복구하고, 스파 공원의 녹지를 확장하며, 포장된 산책로를 조성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875년에는 철도가 개통되어 마차와 전차를 대체했고, 이로써 접근성이 높아지며 스보쇼비체가 온천 휴양지로 더욱 발돋움했습니다. 뒤이어 온천 시설을 소유한 인물들이 노력한 결과 크라쿠프 시민들이 휴식하고자 스보쇼비체를 찾는 경우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스보쇼비체는 예전보다 더 크게 파괴되었고,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서서히 복구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당국이 스보쇼비체의 온천 시설을 점유하고 확장하여 휴양 단지로 만들었습니다. 전쟁 후에 스보쇼비체는 또 불경기를 겪었으나 1956년에 온천 단지가 다시 문을 열면서 호황을 맞았고, 이때 문을 연 온천 단지가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스보쇼비체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도시 온천 휴양지가 되었습니다. 스보쇼비체가 크라쿠프 도시권의 개발 사업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크라쿠프 도심과 고도로 도시화된 주변 지역이 문화나 관광 위주의 여러 즐길 거리를 제공할 때 스보쇼비체는 휴양 및 치료 시설을 통해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스보쇼비체에 위치한 ‘그우브니(Główny)’와 ‘나폴레옹(Napoleon)’이라는 이름의 온천에서는 황산염, 수소, 탄소, 칼슘, 마그네슘이 풍부한 특별한 온천수가 나옵니다. 이 온천수의 황 함유량은 유럽에서 4위이며 전 세계에서 5위입니다. 스보쇼비체의 스파 리조트에서는 류머티즘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일부 신경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합니다.
스보쇼비체의 매력으로는 최신식 치료 및 숙박 시설, 숙련된 운영진, 자연환경과 가까운 위치, 신체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지형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더 꼽을 수 있습니다. 승마장, 자전거 클럽, 테니스 클럽, 크라쿠스 스보쇼비체(Krakus Swoszowice) 축구단이 이미 들어선 400헥타르 면적의 지대에는 스파 리조트를 위한 후속 개발이 계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