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들리나즈드루이는 폴란드 남서부 돌니실롱스크(Dolnośląskie)주 바우브지흐(Wałbrzych)군에 속한 온천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바우브지흐산맥과 구리 소비에(Góry Sowie)산맥 사이에 깊숙이 자리하며, 가문비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주를 이루는 숲이 분포한 경사지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남쪽과 남동쪽으로 트여 있는 골짜기 때문에 거센 바람이 도시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의 일부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가 온화하며 일조량이 높습니다. 예들리나즈드루이는 산악 온천 도시에 해당합니다.
도시에 대한 기록은 13세기에 처음 등장하는데, 도시의 이름은 과거에 이 지역에 분포한 넓은 전나무 숲에서 유래합니다. 이 도시에는 시비드니차-야보르(Świdnica-Jawor) 공작 볼코 1세(Bolko I)를 위해 일하는 나무꾼들이 살았습니다. 이 도시에서 온천수를 최초로 사용한 시기는 1697년으로 추정되며, 도시가 온천수를 더욱 활발히 사용하고 온천 휴양지로 첫발을 내딛은 시기는 1723년이었습니다. 온천은 ‘샤를로텐브룬(Charlottenbrunn)’이라 불렸는데, 이 이름은 예들린카(Jedlinka)의 영주였던 한스 크리스토퍼 폰 제에어-토스(Hans Christopher von Seherr-Thoss) 남작의 부인 샤를로트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온천은 예들리나즈드루이 전역에서 1945년까지 같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직물 및 섬유 산업이 발달하며 도시는 성장하기 시작했고, 예들리나즈드루이의 온천은 실레지아 전역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1768년에는 예들리나즈드루이가 자치권을 얻었습니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예들리나즈드루이의 온천 단지가 18세기 말까지 계속 운영되는 동안 도시에 있는 총 일곱 온천의 물이 음용이나 목욕용으로 이용되며 효능을 나타냈습니다.
1900년에는 예들리나즈드루이에 전보 서비스를 실시하는 우체국이 들어섰는데, 이 우체국은 지금도 당시와 같은 건물에 자리합니다. 모든 가정에 수도가 연결되었고 일부 가정에서는 자연적으로 탄산을 함유한 광천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1902~1903년에는 도로가 포장되고 도시 곳곳에 가스등이 설치되었으나 스파 리조트에는 가스등 대신 전등이 밝혀졌습니다. 예들리나즈드루이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였습니다. 예들리나즈드루이는 실롱스크 전역에서 다양한 문화·오락 행사가 열리는 온천 휴양지로 유명해졌습니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한 숙박 시설도 다양하게 들어섰습니다. 그중 19세기부터 운영된 ‘슈바이차르카(Szwajcarka)’라는 숙소가 가장 유명했는데, 이곳에서는 투숙객이 우유를 이용한 요법을 받고, 밤[栗]을 먹고, 아주 아름다운 나무들에 둘러싸여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1930년대 초에는 예들리나즈드루이의 온천 단지가 최신식으로 개조되며 새로운 요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예들리나즈드루이는 치료를 받거나 그저 여유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회, 스포츠 및 예술 관련 행사를 통해 휴가를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수준 높은 온천 휴양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온천 단지는 문을 닫아야 했고, 1962년부터 다시 운영되었습니다.
현재 예들리나즈드루이에서는 호흡계, 소화계, 비뇨계, 근골격계 질환, 신진대사 이상을 치료합니다. 테레사(Teresa) 요양병원에서는 초기 심장 재활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또한 예들리나즈드루이 안이라면 그 어느 곳에 있더라도 도시화의 진전과 그에 따른 생활 방식의 변화로 발생한 신경과민과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습니다.
예들리나즈드루이에서는 환자와 일반 관광객 모두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조경된 하이킹 코스, 스키 슬로프, 일 년 내내 운영되는 터보건 트랙, 고공 로프가 있는 놀이공원을 비롯한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운동을 하고 스포츠를 즐기면 됩니다. 폴란드와 체코를 넘나들며 마을을 둘러보며 짧게 도보 여행을 해도 좋고, 그보다 덜 움직이고 싶다면 예들리나즈드루이 어디서든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저 감상하기만 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