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에플리체실롱스키에즈드루이는 폴란드 남서부 돌니실롱스크(Dolnośląskie)주 옐레니아구라(Jelenia Góra) 내 온천 지구입니다. 900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 옐레니아구라는 카르코노셰(Karkonosze)산맥 가운데에 있는 옐레니아구라 골짜기에 자리합니다. 산맥 일대의 주요 도시인 옐레니아구라에서는 집회와 음악회와 연례 축제 등 문화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행사가 많이 열립니다. 웅장한 산과 숲이 도시 경계 가까이에 펼쳐져 있는데, 특히 카르코노셰 국립공원과 가깝다는 사실은 옐레니아구라의 매우 큰 장점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옐레니아구라 골짜기 곳곳에는 성, 궁전, 공원, 정원 등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장소들이 있습니다.
치에플리체는 마을의 기원이 역사의 뒤안길로 까마득히 사라졌을 정도로 폴란드의 온천 휴양지 중 아주 오래된 편입니다. 슬라브인의 일파인 보브잔(Bobrzan)인이 이미 이곳의 온천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175년에 볼레스와프 비소키(Bolesław Wysoki) 공작이 다친 사슴을 쫓으려 이 지역에 들어왔다가 온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온천수의 효능이 알려지며 환자들이 효능을 경험하기 위해 치에플리체에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베르나르트 르부베츠키(Bernard Lwówecki) 공작이 이 사실을 알고 온천이 포함된 영지 250곳을 예루살렘 성 요한의 구호형제회에 하사했다고 추정됩니다. 이후로 이 수도회는 치에플리체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계속 보살폈습니다.
14세기부터 1945년까지 치에플리체와 주변 토지는 샤프고치(Schaffgotsch) 가문이 소유했습니다. 샤프고치 가문은 원래 호이니크(Chojnik) 성에 살았으나 17세기에 성이 파괴된 후로는 여러 차례 다시 지어진 다른 궁전에 주로 살았습니다. 1945년에 마을이 폴란드 영토가 되면서 마을 이름이 독일식 바트바름브룬(Bad Warmbrunn)에서 치에플리체실롱스키에즈드루이로 공식적으로 바뀌었고, 남아 있던 독일 출신 주민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1976년 7월 2일에 치에플리체는 옐레니아구라의 지구로 공식 편입되었습니다.
치에플리체 온천수의 여러 의학적 효능은 오랫동안 수많은 유명 인사가 경험했습니다. 온천수의 덕을 본 인물로는 라지비우(Radziwiłł) 가문의 고위 관리, 그니에즈노 대주교 미하우 스테판 라지에요프스키(Michał Stefan Radziejowski),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 계몽주의 지식인 휴고 코웡타이(Hugo Kołłątaj)와 이자벨라 차르토리스카(Izabela Czartoryska) 등이 있었으나, 그중 단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왕실 사람들을 대거 데려온 마리아 카지미에라 소비에스카(Maria Kazimiera Sobieska) 여왕이었습니다.
치에플리체 지하수는 연령이 16,000년과 22,000년 사이이고, 대체로 광물 함량이 낮지만 불화물과 규산은 풍부합니다. 온천수 온도는 섭씨 37도에서 87도 사이인데, 치에플리체에서 가장 깊은 온천에서 나오는 물은 비슷한 깊이에서 나오는 폴란드의 온천수 중 가장 온도가 높습니다.
이런 특성을 지닌 치에플리체의 온천수는 몸을 덥히고, 요로결석 형성을 예방하고, 뼈의 무기질 함량을 높이고, 충치가 생기지 않게 하고, 이뇨를 촉진하고, 항균 작용을 하고, 혈청의 총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줍니다. 치에플리체 스파 리조트에 머무르면 체온을 높이고, 여러 질병 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목욕을 하거나 온천수를 이용하는 다른 요법을 받으며 체외의 유익한 물질을 몸 안에 흡수하거나, 광천수를 마시며 체내로 흡수할 수도 있습니다. 치에플리체에서 온천수는 모든 수치료법에 이용됩니다. 치에플리체에는 온천 일반 병원 네 곳, 온천 전문 병원 한 곳, 요양소 여섯 곳, 자연요법 센터 두 곳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