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니차즈드루이는 돌니실롱스크(Dolnośląskie)주 크워츠코(Kłodzko)군에 속한 온천 도시입니다. 산록 지대 온천 휴양지에 해당하는 이 도시는 스토워베(Stołowe)산맥 남동쪽 끝에 위치한 피에키엘니아 구라(Piekielnia Góra) 산괴 기슭의 비스트쉬차(Bystrzyca)강 계곡, 그리고 카미엔나 구라(Kamienna Góra) 봉우리의 경사지에 걸쳐 있습니다. 도시의 전형적인 산록 지대 기후는 온화한 편이며, 도시 주위 경사지에 위치한 침엽수가 많은 무성한 숲이 기후를 부드럽게 합니다. 폴라니차는 비스트쉬차 크워츠카(Bystrzyca Kłodzka), 크워츠코, 슈치트나(Szczytna) 등의 도시와 이웃해 있습니다. 폴란드 빙하기 당시 이 지역은 스칸디나비아 대륙 빙하로 덮여 있었는데, 그 결과 이 지역의 계곡에는 제4기 퇴적층이 많이 형성되었습니다. 도시 주위 산들은 백악기 후기 사암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폴라니차의 스파 리조트에서는 기후와 천연 온천수와 진흙을 요법에 중요하게 이용합니다.
폴라니차가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347년으로, 이 기록에 따르면 하이데(Heyde)라는 무성한 숲에 마을이 둘러싸여 있었다고 언급됩니다. 마을의 영주는 실롱스크
지역의 유력한 기사 가문이었던 글라우비츠(Glaubitz) 가문이었는데, 이 가문은 슈체르바(Szczerba) 성에 살았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마을 일대 토지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한편 이 지역에서 발견된 샘들은 ‘개구리의 샘’이라 불렸습니다. 샘 안에서 죽은 개구리들이 발견되어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물에 뛰어든 개구리가 샘물의 높은 탄산 농도 때문에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역에서 나오는 샘물의 효능은 일찍이 알려져 있었으나 폴라니차에 온천 시설에 대한 기록은 18세기에 처음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크워츠코 출신의 상인 요제프 그롤름스(Joseph Grolms)가 폴라니차의 온천 시설에 투자했고, 이후의 온천 소유주들은 지역 일대에 시설을 더욱 많이 지었습니다. 막대한 투자 자본이 유입되면서 1873년에는 온천 관련 활동의 잠재력이 완전히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브로츠와프(Wrocław) 출신의 사업가 벤첼 호프만(Wenzel Hoffmann)이 지역 온천의 효능을 활용하는 시설의 설계와 건설을 의뢰했고, 그 결과 휴양지의 핵심 시설로 광천수 음용실, 스파 공원, 극장, 카페, 주거용 건물 등이 지어지며 폴라니차는 유럽 온천 휴양지로서 일반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 뒤 마을을 매입한 게오르크 하세(Georg Hasse)는 폴라니차가 더 유명한 다른 휴양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사업과 양조에 조예가 깊었고 조정 능력이 뛰어났던 하세는 온천 휴양지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을 모았고,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를 통해 최신 온천 기술을 도입하고 고급 스파 시설과 기타 부대 시설을 지었습니다. 이토록 활발한 개발이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광고 기법에 크게 의존했다는 점도 언급될 만합니다. 폴라니차의 온천 단지 전체는 2차 세계대전 때 야전병원과 요양소로 바뀌었으나, 전쟁으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기 때문에 종전 직후에 다시 원래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폴라니차는 최신 의료 시설, 그리고 환자와 일반 관광객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발달된 주거 인프라로 국제적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문화, 스포츠, 오락 관련 행사가 정기적으로 많이 열리고, 다양한 길이와 난이도의 자전거 코스와 하이킹 코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폴라니차의 스파 리조트는 심장 질환, 위 질환, 운동 장애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며 건강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방문객에게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