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브니츠나즈드루이는 마워폴스카(Małopolskie)주 노비송츠(Nowy Sącz)군에 속합니다. 피브니츠나즈드루이는 같은 이름을 지닌 자치구의 중심 도시이며, 피브니츠나즈드루이자치구는 코쿠슈카(Kokuszka), 그웽보키에(Głębokie), 므워두프(Młodów), 비에르호믈라(Wierchomla), 웜니차즈드루이(Łomnica-Zdrój), 주브지크(Zubrzyk) 등 6개 도시, 그리고 도시보다 규모가 작은 7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피브니츠나즈드루이는 포프라트(Poprad)강과 베스키드 송데츠키(Beskid Sądecki)산맥의 기슭에 위치합니다. 도시에는 철도가 통과하고, 노비송츠와 연결되는 도로에는 옛 국경 검문소가 있습니다. 도시에는 온화한 산악 기후가 나타나며, 도시 주위 골짜기의 무성한 침엽수림이 기후를 부드럽게 합니다. 피브니차즈드루이에서는 이런 기후에 더해 마그네슘과 칼슘과 철이 풍부한 온천수를 요법에 주로 사용합니다.
피브니츠나 자유 도시는 1348년에 카지미에시 3세 비엘키(Kazimierz III Wielki) 왕의 칙령으로 포프라트강 계곡에 세워졌는데, 이는 국경 방어를 위한 도시 건설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피브니츠나가 세워진 데에는 도시 위치의 이점을 이용해 왕실의 수입을 늘리고자 한 면도 있었습니다. 노비송츠 주민이었던 한코(Hanko)라는 인물이 마그데부르크법에 따라 도시를 설계했습니다. 도시의 원래 이름이었던 ‘피브치츠나 시야(Piwniczna Szyja)’에서 ‘시야’는 ‘목’이라는 뜻으로,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포프라트강의 폭이 좁아지는 특징을 가리키고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 이름은 18세기 말까지 쓰였습니다. 헝가리와 연결되는 번화한 무역로와 왕이 내린 여러 특혜 덕분에 도시는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피브니츠나에는 18세기에 이미 수도가 설치되어 있었고, 18세기 말까지 학교, 술집, 제분소 다섯 곳, 저수지, 제지 공장, 병원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76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목조 성당과 주택 약 40채가 소실되었습니다.
피브니츠나의 온천 역사는 1880년에 리비우(Lviv) 출신 의사 율리우시 코르빈 공시오로프스키(Juliusz Korwin Gąsiorowski)가 도시 인근 온천수를 치료용으로 사용할 것을 권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과학자들이 포프라트강 계곡 일대의 천연 온천과 일부 시추 온천을 중심으로 온천수의 발생 원인과 특성을 연구했습니다. 1932년까지 피브니츠나는 치료와 휴양의 중심지로 유명해졌고, 특별히 시추된 온천에서 나오는 온천수가 스파 리조트로 바로 공급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피브나츠나의 개발 계획이 모두 중단되었으나, 종전 후에 스파 시설과 부대 숙박 시설이 다시 지어졌습니다. 1967년에 피브나츠나는 온천 도시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피브나츠나의 온천수는 ‘신 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그네슘과 칼슘 이온을 풍부히 함유한 이 온천수는 위액을 중화하는 효과가 있어 위궤양, 위염, 당뇨병, 장염, 췌장염 치료에 좋습니다. 피브니츠나 온천 리조트의 의료 시설에서는 온천수 목욕, 진흙 요법, 수치료 샤워, 마사지, 운동 요법, 흡입 요법, 온천수 음용 등 각종 다양한 요법을 실시합니다.
오늘날 쾌적한 온천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피브니츠나의 주요 매력으로는 풍경과 기후, 평온하고 안락한 분위기가 꼽힙니다. 여러 하이킹 코스에서는 여름에 산책을, 겨울에 스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다양한 길이와 난이도의 산악자전거 코스도 특별히 준비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는 전문가만 이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피브니츠나 내의 지역인 수하 돌리나(Sucha Dolina), 그리고 인근 도시인 비에르호믈라 마와(Wierchomla Mała)와 코쿠슈카에서는 겨울 스포츠를 위한 환경과 시설이 아주 잘 마련되어 있으며, 드래그리프트, 버튼리프트, 체어리프트가 주위의 산꼭대기까지 운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