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형태의 통널 교회들은 과거에 아주 많이 지어졌지만 현재는 겨우 노르웨이에 서른한 곳, 그리고 폴란드의 카르파츠 구르니(Karpacz Górny)에 방 교회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카르파츠의 자매 교구인 독일의 하넨클레(Hahnenklee)에도 1908년에 노르웨이식으로 지어진 목조 교회가 있습니다. 19세기에 방 교회가 너무 작으며 보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 밝혀지자 교회를 매각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매각해서 얻은 돈으로는 새로운 교회를 짓기 위해 차입한 돈을 상환해야 했습니다.
방 교회는 원래 12세기 말에 방(Vang)이라는 지역에 지어졌습니다. 교회 이름의 유래가 된 이 지역은 노르웨이 남부의 도시이며, 이 지역에는 같은 이름의 호수가 있습니다.
바이킹이 지은 이 뛰어난 건축물은 드레스덴(Dresden)에서 활동하던 노르웨이 화가 요한 크리스티안 달(Johan Christian Dahl)의 노력으로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iedrich Wilhelm IV)에게 427마르크라는 값에 팔렸습니다. 왕실 건축가가 교회 도면을 완성했고, 교회는 부분별로 분해되어 상자에 담긴 채 1841년에 슈체친(Szczecin)을 거쳐 베를린 왕립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베를린의 파우엔인젤(Pfaueninsel, ‘공작 섬’)에 교회를 세운다는 원래 계획을 취소하고 교회가 예배를 치를 수 있을 만한 다른 장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부코비에츠(Bukowiec)의 프리데리케 폰 레덴(Friederike von Reden) 백작 부인의 개입으로, 교회는 카르파츠와 그 주변 지역의 개신교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1842년 봄에 카르코노셰(Karkonosze)산맥으로 옮겨졌습니다. 결국 교회는 처음에 오데르(Oder)강을 따라 배로 옮겨졌다가 나중에 마차 아홉 대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교회 부지는 치에플리체(Cieplice)의 크리스티안 레오폴트 폰 샤프고치(Christian Leopold von Schaffgotsch) 백작이 마련했는데, 카르파츠 남부와 시니에슈카(Śnieżka)산 중간에 위치한 해발고도 885미터의 마을인 차르나 구라(Czarna Góra)의 경사지였습니다.
수백 제곱미터의 교회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목사관, 학교, 공동묘지가 철거되고, 바위가 치워졌으며, 6미터 높이의 옹벽이 세워졌습니다.
1842년 8월 2일에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직접 정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44년 7월 28일에 교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헌당식에는 왕과 그의 사촌인 프레데릭(Frederik) 네덜란드 왕자를 비롯한 저명한 인물들이 참석했습니다.
하(下)실레지아 지역 교회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교회의 종탑에서 처음으로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이 종소리는 방 교회가 노르웨이에 있었을 때와 똑같이 앞으로도 예배를 치를 것임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훌륭한 종교 건축물들을 본떠 지어진 방 교회는 옛 북유럽 예술의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바이킹이 배를 만든 방식대로 이 교회에는 못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고 나무 볼트와 열장장부촉으로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방 교회의 재료인 노르웨이산 소나무는 송진이 풍부하고 내구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바깥쪽 문을 통과할 때 문틀을 보면 용과 식물이 얽힌 장식으로 꾸며진 반(半)기둥에 눈길이 갑니다. 기둥머리에는 문을 지키는 역할의 상징에 해당하는 정형화된 모습의 사자 조각이 달려 있습니다.
부싯돌, 뿔, 물고기 뼈 정도의 도구만 이용할 수 있던 시절에 사자의 머리, 다리, 털을 이토록 훌륭한 솜씨로 조각했다는 점은 매우 놀랍습니다. 다른 장식과는 다르게 사자 조각들은 밖을 향해 있습니다.
우측에 있는 남문(南門)은 위쪽에 독특한 채광창이 달려 있습니다. 채광창이 클로버 형태인 것으로 보아 문은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쪽 문의 위쪽 모서리에는 날개 달린 용의 조각이 있습니다. 가로로 누운 ‘8’자 모양의 형상을 용이 찢고 있는 모습은 선과 악의 영원한 싸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맞은편의 남문은 12세기 초반에 아인드리디(Eindridi)라는 인물이 조각했습니다. 문틀 가에는 “아인드리디가 성 올라프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조각하였다”라는 문구가 룬 문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문틀을 장식하는 반기둥에는 바이킹 전사들의 얼굴이 묘사되어 있는데, 끝이 갈라진 혀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 혀는 지식과 지혜의 대물림을 상징합니다.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기둥들의 윗부분은 비잔틴 양식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역시 예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기둥머리는 동물과 식물을 표현한 조각과 ‘마스카롱(mascaron)’이라는 얼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중앙 신랑(身廊)의 가운데에 있는 기둥 네 개와 신랑 양쪽 옆의 기둥들은 바이킹 배의 돛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단 앞의 기둥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모습과 선지자 다니엘이 사자 굴에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기둥들은 뛰어난 조각가였던 야노비체의 야쿠프(Jakub of Janowice)가 다시 제작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십자가와 예수상도 야쿠프가 만들었습니다. 십자가는 1844년에 오크 나무줄기 한 개로, 예수상은 1846년에 피나무로 제작되었습니다.
제단 양옆에는 리샤르드 자용츠(Ryszard Zając)가 1980년에 제작한 촛대 두 개가 서 있습니다. 한쪽은 충실의 상징인 백조 모양이고, 다른 쪽은 사랑의 상징인 하트 모양입니다. 두 촛대는 결혼식 때만 밝혀집니다. 방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 갈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740년경에 제작된 하실레지아 바로크 양식의 세례대는 바우브지흐(Wałbrzych) 근처 마을인 지에치모로비체(Dziećmorowice)에 있던 철거된 교회에서 가져왔습니다. 설교단은 노르웨이에서 가져온 나무로 제작되었습니다. 벽에 걸린 판 두 개는 예배 중에 송가가 몇 곡 불렸는지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1904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둘러싼 회랑은 추위를 막아 줍니다. 과거에 이 회랑은 무기나 물고기 그물을 두는 장소였고, 중세 시대에는 속죄를 행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낮에 교회 내부는 174개의 작은 크라운 유리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햇빛으로 밝혀집니다. 교회를 나서면 아주 독특한 지붕 장식을 볼 수 있습니다. 지붕 꼭대기에 올려진 첨탑이 용의 벌어진 입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는 바이킹 배에 사용된 장식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방 교회는 토속신앙의 요소가 스칸디나비아 기독교 속에 스며든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롱스크지역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24미터 높이의 탑은 이 작은 교회가 시니에슈카산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덜 받도록 막아 줍니다.
1856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서쪽 경사지에 기념물을 세웠는데, 이 기념물에는 폰 레덴 백작 부인을 기리는 묘비명이 새겨져 있으며 백작 부인의 모습이 담긴 메달이 달려 있습니다. 교회 안뜰에는 교구의 교인들이 사용하는 목사관이 있습니다. 선교 예배당(Chapel of Christian Mission)에서는 일반 성경과 어린이용 성경, 기독교 관련 출판물, 방 교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 앨범, 풍경 엽서와 교회와 연관된 여러 기념품을 볼 수 있습니다. 서점 옆에 있는 리샤르드 자용츠가 1994년에 제작한 조각상은 나사로의 부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