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나 성당은 원형이 대부분 보존된 독특한 건축물입니다. 같은 자리에 지어졌던 이전의 두 성당은 각각 15세기와 17세기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남아 있는 벽과 건물 기초가 성 안나 성당이 지어질 때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내부 비품 또한 대체로 원래대로 유지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지만 1962년까지 이어진 복원을 통해 원래의 수려함을 되찾았습니다. 성당 내부는 물론 탑에서 보이는 도시 풍경도 훌륭합니다.
바르샤바 구시가가 세워진 위치는 교역에 유리한 강가로, 발트해와 흑해 사이의 주요 통로였습니다. 부유한 상인과 장인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뒤 정착하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습니다. 도시의 모습은 수백 년에 걸쳐 바뀌었는데, 목조 건물이 화재로 불타 없어진 자리에 석조 주택이 들어서는가 하면 흙으로 쌓은 도시 방벽이 돌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1429년에 지어진 구 시청 주위에는 교구 성당(현재 성 요한 대성당)과 망루와 옹성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녔던 구시가는 1944년에 90퍼센트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주저앉았으나, 오랜 시간의 복원 끝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지그문트 기둥(Kolumna Zygmunta)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입니다. 기둥은 원래는 지금과 다른 위치에 있었는데, 19세기에 크라코프스키에 프셰드미에시치에(Krakowskie Przedmieście) 거리의 축이 변경되었을 때,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후에 바르샤바 동서를 잇는 WZ 도로가 건설될 때 이동했습니다. 기둥과 그 위 동상은 1944년 9월 2일에 파괴되었고, 1949년에 완전히 복원되었습니다. 무너진 기둥 잔해는 WZ 도로 쪽에서 볼 때 바르샤바 왕궁 벽 옆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그문트 기둥은 인어 동상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띄는 바르샤바의 상징물로 여겨집니다.
바르샤바 왕궁에 실제로 왕이 거처한 것은 마조비아 지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에 편입된 16세기부터였습니다. 왕궁은 ‘대홍수’라 불리는 스웨덴의 침략과 폴란드 분할 등의 사건으로 파괴되었다가 복원되기를 여러 번 거듭하다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며칠 동안 폭격을 맞아 거의 완전히 불탔습니다. 다행히도 건물 내부에 있던 귀중한 예술품 일부는 늦지 않게 옮겨지고 숨겨졌으나 남은 작품은 강탈되었습니다. 1944년에 왕궁은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폭파되었습니다. 복원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인 1971년에 결정되었습니다. 복원에 드는 자금 대부분은 사회의 후원으로 마련되었고, 왕궁은 1984년에 관광객에게 개방되었습니다. 1980년에 역사적 건축물이 충실하게 성공적으로 복원된 사례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성 요한 대성당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입니다. 7월부터 9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이 성당에서는 국제 오르간 음악제(International Organ Music Festival)의 일환으로 음악회가 열립니다. 또한 이 성당에서는 1791년 5월 3일 헌법에 대한 선서가 이루어지는 등 역사적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지하실에는 여러 역사적 인물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데, 특히 ‘천년의 대주교’ 스테판 비신스키(Stefan Wyszyński)의 유해를 모신 예배당 겸 봉안당이 주목을 끕니다.
구시가 광장 주위에는 훌륭한 레스토랑, 카페와 클럽, 미술관과 박물관이 자리한 건물이 가득합니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이 광장에는 2008년에 도시의 상징, 바르샤바 인어 동상이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광장은 네 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에는 바르샤바의 계몽 시대 활동가 코웡타이(Kołłątaj), 데케르트(Dekert), 바르스(Barss), 자크셰프스키(Zakrzewski)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구시가 관광에서 아주 중요한 한 곳은 아쉽게도 아직 개방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바르샤바 박물관의 실내와 오래된 지하 통로는 2012년 봄에 보수 후 개방되었습니다.
바르샤바 옹성은 과거에는 전략적 기능을 하는 도시 방벽의 일부였지만, 오늘날에는 화가가 작품을 전시하고 음악가가 구시가를 둘러보는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1548년에 지어진 옹성은 총 길이가 약 1.2km에 달하는 도시 방벽의 일부였습니다. 현재는 옹성 벽 안쪽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전시가 열리는데, 바르샤바의 역사를 담은 사진, 그리고 지금은 소실된 방어선과 탑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구시가의 예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지도를 현재 모습과 비교하면 옹성이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바르샤바의 중심부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성모 방문 성당은 바르샤바 신시가에 위치한 교구 성당입니다. 성당은 형태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결국 현재와 같은 고딕 양식 성당이 되었고, 높이 솟은 독특한 종탑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림 같은 장소에 자리 잡은 이 성당에 오면 자연스럽게 벤치에 앉아 잠시 쉬면서 비스와강과 코시치우슈코(Kościuszko) 제방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름에 코시치우슈코 제방에서는 야외 행사와 음악회가 열립니다.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에는 전투 당시 저항군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20만 폴란드인이 목숨을 잃으며 패배로 막을 내린 바르샤바 봉기는 폴란드와 바르샤바의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웠고 유혈이 낭자했던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공화국 궁전’으로도 불리는 크라신스키(Krasiński) 궁전은 원래 바르샤바의 통치자였던 얀 크라신스키(Jan Krasiński)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폴란드 국립도서관의 일부 특별한 장서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크라신스키 궁전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매력적인 바로크 건축물로 여겨집니다. 궁전 안의 여러 부조(浮彫)는 고대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입니다. 궁전 뒤의 공원은 산책과 약간의 휴식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이곳은 거의 처음으로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도시의 모든 주민에게 개방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궁전 옆과 건너편의 푸른빛이 감도는 대법원 건물은 1999년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오도바(Miodowa) 거리는 좁지만 활기가 가득한 거리입니다. 이곳에는 오래된 화려한 주택이 늘어서 있습니다. 24번지 건물(거리 왼편)에는 과거에 콜레기움 노빌리움(Collegium Nobilium)이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정치인의 자식이 다니는 초등학교였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연극 아카데미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17번지 건물(거리 왼편)은 18세기에 지어진 바르샤바 대주교 궁전으로, 폴란드 대주교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16번지 건물(거리 오른편)은 바르샤바 유일의 동방 가톨릭교회 성당입니다. 폴란드 보건부가 사용하는 파츠(Pac) 궁전은 대주교 궁전 바로 옆에 있습니다. 미오도바 거리에서 들여다볼 다른 건물로는 카푸친 성당이 있는데, 제단 오른쪽에 놓인 관에는 성당을 세운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의 심장이 담겨 있습니다. ‘니케 기념비(Monument of Nike)’라고도 불리는 바르샤바 영웅 기념비(Monument of Warsaw’s Heroes)도 살펴볼 만합니다.
극장 광장(Theatre) 오른편에는 후기 바로크 양식의 블란크(Blank) 궁전이 있습니다. 블란크 궁전 뒤에 있는 야브워노프스키(Jabłonowski) 궁전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바르샤바 시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파괴된 뒤 1990년대에 복원되었지만 외벽과 시계탑만 원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궁전에 오면 꼭 시계탑 아래 대문을 통과해서 19세기에 놓인 건물 기초를 보시기를 권합니다. 야브워노프스키 궁전을 마주 보는 거대한 고전주의 양식 건물은 테아트르 비엘키(Teatr Wielki, ‘대형 극장’)로, 국립오페라단과 국립극단이 상주하는 곳입니다. 이 극장의 오페라 무대는 유럽에서 제일가는 수준으로 거대합니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들어가면 컷글라스 샹들리에를 비롯한 매혹적인 실내 장식, 기둥과 인상적인 바닥 타일이 있는 넓은 로비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극장 광장 끝에는 1821년에 지어진 페트리쿠스(Petrykus) 공동주택 건물이 있으며, 건물 안에는 바르샤바 시민들이 아주 좋아하는 여러 식당과 클럽이 들어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