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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은 2004년 8월 1일, 봉기 발생 60주년을 맞아 공식적으로 개관했습니다. 폴란드 박물관으로서는 독특하게도 멀티미디어 요소가 기존 전시, 봉기 당시의 일상 물품, 오디오·비디오 설명과 접목되어 있습니다.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는 1989년 8월 1일에 공식적으로 제막되었습니다. 일부 공무원과 정치인이 기념비 건립을 저지하려 했으나 일군의 참전용사들이 수년에 걸쳐 맞섰습니다. 기념비 바로 옆, 드우가(Długa) 거리와 미오도바(Miodowa)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는 추모 명판, 그리고 전투 당시 바르샤바 시민들이 거처로 사용한 도시 하수도를 나타낸 지도가 있습니다. 하수도는 1944년 8월 30일, 북부 부대가 은행 광장(Bank Square)을 독일군에게서 탈취하려 했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며칠 뒤에 5천 명 이상의 봉기군이 구시가를 탈출해 졸리보시(Żoliborz) 지구로 향할 때도 하수도를 이용했습니다.

포드발레(Podwale) 거리, 바르샤바 옹성에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서 있는 어린 봉기군 동상은 바르샤바 봉기에 참여한 어린 용사들을 기립니다. 동상은 1983년 10월 1일에 제막되었고, 바르샤바 스카우트에 바쳐졌습니다.

19세기에 지어진 파비아크(Pawiak) 감옥은 나치 점령기에 게슈타포에 의해 폴란드에서 가장 큰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습니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10만 명이 파비아크에 갇혔는데, 그중 약 3만 7천 명이 수용실과 감옥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거나 슈하(Szucha) 거리의 감옥에서 심문을 받다가 처형되거나 살해되었습니다. 약 6만 명은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파비아크 감옥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는 1940년에 나치가 유대인을 도시의 다른 곳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지정한 구역입니다. 약 40만 명의 유대인이 겨우 2.6km2의 참혹한 환경 속에서 강제로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 2년 동안 게토 주민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숙청은 1942년에 시작되었는데, 집단 처형이 시행되는 한편 게토 주민 약 30만 명이 움슐라크플라츠(Umschlagplatz)라는 승강장에서 열차에 태워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1943년 4월에 나치 군대가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 게토에 들어왔을 때 봉기가 일어났지만 1개월 안에 진압되었습니다. 봉기 진압 후에 게토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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